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1997년 외환위기 (1997 Asian Financial Crisis)

최종 수정 2026년 10월 5일 · 투자위키 운영진 검수
투자위키
다른 명령
거시경제 지표 및 성장 금리, 환율, 1인당 GDP, GDP, GNP, 실질 GDP, 경제 성장, 경제활동인구, 비경제활동인구, 부양비, 지니계수, 인간개발지수, 고통지수,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물가 수준,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통화량, M3 (총유동성), 준화폐, 경상수지, 자본수지, 국제수지, 무역수지, 순수출, 실질실효환율, 소매 판매, 아웃풋 갭, 인플레이션 갭, 총공급, 자연실업률, 실망실업자, 생활 수준, 긴축 정책, 경기침체, 구매력 평가, 기대인플레이션, 수입물가지수, 마찰적 실업
미시경제 및 선택 이론 수요의 법칙, 공급의 법칙, 한계비용,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 한계소비성향, 소득 효과, 대체 효과, 보완재, 정상재, 열등재, 교차탄력성, 가격 민감도, 무차별곡선, 기대효용, 사중손실, 생산자 잉여, 현시선호이론, 합리적 기대 가설, 지대 추구, 도덕적 해이, 역선택, 효율 임금, 전환 비용, 경제적 균형, 수요 충격, 공급 충격, 중간재, 장바구니 물가, 빅맥지수, 비교우위, 절대우위, 엥겔 계수, 가격 선도, 담합, 규범 경제학, 기축통화, 정보 비대칭
시장 구조 및 체제 독점적 경쟁 시장, 과점, 복점, 진입 장벽,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불완전 시장, 암시장, 자본주의, 사회주의, 혼합 경제 체제, 국유화, 사회간접자본, 기준연도 분석, 분식회계, 소비자심리지수, 미시간 소비자심리지수, 덤핑, 금수조치, 탈달러화, 통화 가치 하락, 일중 수익률, 외생적 성장, 세이의 법칙, 일반균형이론, 시장 오버행
이론 및 현상 보이지 않는 손, 창조적 파괴, 필립스 곡선, 승수효과, 화폐수량설, 화폐유통속도, 화폐환상, 래퍼 곡선, K자형 경제, 블랙 먼데이, 닷컴 버블, 브레튼우즈 체제, NAFTA,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72의 법칙, 착각적 진실 효과, 채찍 효과, 편승 효과, 풍선효과, 헤드라인 효과, 흑자도산, 라이트의 법칙, 무임승차자, 디지털 격차, 실버 쓰나미, 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자산효과, 혁신 기술, 총수요-총공급 모델
접기

1997년 외환위기는 1997년 말 한국이 외화 부족으로 대외 채무를 갚기 어려워져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사건이다.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발표했고,[1] IMF 이사회는 12월 4일 SDR 155억(약 210억 달러) 규모의 3년 대기성차관을 승인했다.[2]

핵심요약
  • 단기외채가 많이 쌓인 상태에서 대기업 연쇄 부도와 동남아 위기가 겹쳐 외화 차입이 막혔다
  • 1997년 11월 21일 IMF 지원 요청을 발표했고, 12월 4일 IMF가 210억 달러 규모 대기성차관을 승인했다
  • 원/달러 환율은 12월 하순 1,900원대까지 올랐고 코스피는 12월 12일 350선까지 떨어졌다
  • 이후 자유변동환율제, 통합 금융감독기구, 외환 자유화 같은 제도 변화가 이어졌고 2001년 8월 IMF 차입을 모두 갚았다

배경

1990년대 들어 단기외채 비중이 빠르게 늘어 1996년 말 총외채 가운데 단기외채가 58.2%였다. 외환보유액을 단기외채로 나눈 비율은 1996년 54.7%에서 1997년 4분기 39.8%로 낮아졌다(한국은행 「경제분석」 게재 논문 기준).[3] 태국·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한 은행·종금사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3개월짜리 단기 자금을 빌려 1년 이상 장기 대출을 해 주고 있었는데, 동남아 위기로 외자 조달이 끊기고 대출 회수도 어려워지자 종금사들은 국내 대출을 회수해 외채를 갚기 시작했다.[1] 1997년 들어 한보철강, 삼미, 기아 등 대기업이 잇따라 부도났고,[4] 국제 기준 부실채권은 1997년 9월 말 32조 원(GDP의 7%)으로 1996년 말의 약 두 배가 됐다.[5]

전개

날짜 사건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6]
7월 기아그룹 부도[7]
10월 23일 홍콩 증시 급락과 국가신용등급 하향 뒤 대외 자금 조달 급격히 악화[5]
10월 24일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 법정관리 신청[6]
10월 28일 환율이 일일 변동폭 상한(2.25%)까지 올라 30일까지 외환 거래 중단. 11월 17일부터 다시 4일 연속 상한[8]
11월 19일 금융시장 안정 대책 발표: 예금 원리금 2000년 말까지 전액 보장, 환율 변동폭 10%로 확대[8]
11월 21일 정부, IMF 자금 지원 요청 발표[1]
12월 3일 정부와 한국은행, IMF에 대기성차관을 요청하는 의향서와 경제프로그램에 서명[5]
12월 4일 IMF 이사회, SDR 155억(약 210억 달러) 대기성차관 승인[2]

IMF 승인 당시 국제기구 지원은 IMF 210억 달러, 세계은행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 40억 달러였고, 12개국이 200억 달러 이상의 2선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2] 지원이 정해진 뒤에도 외화 유출이 이어져 12월 18일 가용외환보유액은 38.4억 달러까지 줄었다(한국은행 「경제분석」 게재 논문 기준).[3]

시장 영향

  • 환율: 원/달러 매매기준율은 1997년 1월 3일 844.6원에서 11월 21일 1,139.0원, 12월 16일 1,643.7원을 거쳐 12월 24일 1,964.8원으로 1997년 최고였다.[9]
  • 주가: 코스피는 1997년 6월 17일 792.29에서 12월 12일 350.68로 떨어졌고, 1998년 6월 16일 280.00까지 내려갔다.[10]
  • 금리: 콜금리(1일물)는 1997년 1월 3일 10.80%에서 12월 30일 27.15%로 뛰었고, 회사채(3년, AA-) 수익률은 12월 23일 31.11%로 가장 높았다.[11]
  • 외환보유액: 월말 외환보유액은 1997년 10월 말 305.1억 달러에서 12월 말 204.1억 달러로 줄었다가 1998년 12월 말 520.4억 달러로 회복했다.[12]
  • 성장: 1998년 실질 GDP 성장률은 −4.9%였다(현재 ECOS 기준).[13]

정부·IMF 대응

  • IMF 프로그램: 1998년 실질 성장률 둔화를 약 3% 수준에 그치게 하고(1999년 잠재성장 수준 회복) 물가를 5% 이하로 억제하며, 외환보유액을 1998년까지 수입 2개월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통화를 즉시 긴축하고 환율은 유연하게 운용하기로 했으며, 통합 금융감독기구 설치, 한국은행 독립, 기업 재무제표의 연결 기준 작성과 외부감사인 인증 의무화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5]
  • 자본시장 개방: 상장주식의 외국인 전체 보유 한도를 26%에서 1997년 말 50%, 1998년 말 55%로, 외국인 1인 한도를 7%에서 1997년 말 50%로 올리기로 했다.[5]
  • 유동성 지원: 한국은행은 제일은행과 16개 종금사에 특별대출을 하고, 11월부터 외환보유액으로 국내 은행·종금사에 긴급 외화자금을 지원했다.[8]
  • 금융 구조조정: 1997년 12월 14개 종금사 등이 영업정지됐고 1998년 2월 10개 종금사의 인가가 취소됐다.[7] 1998년 6월 29일 동화·동남·대동·충청·경기 5개 은행의 계약이 다른 은행으로 이전됐다.[14]

이후 제도 변화

  • 1997년 12월 16일 은행 간 환율의 일일 변동폭 제한이 폐지돼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뀌었다.[15]
  • 1997년 12월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1998년 4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설립됐고,[7] 1999년 1월 2일 4개 감독기관이 통합된 금융감독원이 출범했다.[16] 1998년 4월 1일에는 통합 예금보험공사가 출범했다.[14]
  • 1998년 7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 투자가 완전히 자유화됐고, 1998년 9월 제정된 외국환거래법이 1999년 4월 시행되면서 외국환관리법이 폐지됐다.[17]
  • 한국은 2001년 8월 23일 IMF 대기성차관 인출액 SDR 144억(약 195억 달러) 가운데 남은 SDR 1.112억을 조기 상환해 IMF 차입을 모두 갚았다.[18]

관련 연결 문서

출처

  1. ↑ 1.0 1.1 1.2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 극복". (접근일: 2026-10-02)
  2. ↑ 2.0 2.1 2.2 IMF, "IMF Approves SDR 15.5 Billion Stand-by Credit for Korea (Press Release No. 97/55)", 1997.12.4. (접근일: 2026-10-02) — 보관본: 웹 아카이브 사본
  3. ↑ 3.0 3.1 박대근(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5권 제1호), "韓國의 外換危機와 外債", 1999. (접근일: 2026-10-02)
  4. ↑ 국가기록원, "이달의 기록: 2007년 12월 IMF 구제금융사건". (접근일: 2026-10-02)
  5. ↑ 5.0 5.1 5.2 5.3 5.4 IMF, "Korea Letter of Intent, December 3, 1997", 1997.12.3. (접근일: 2026-10-02) — 보관본: 웹 아카이브 사본
  6. ↑ 6.0 6.1 국가기록원, "연표와 기록: 1997년도". (접근일: 2026-10-02)
  7. ↑ 7.0 7.1 7.2 금융위원회, "금융시장역사: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시기". (접근일: 2026-10-02)
  8. ↑ 8.0 8.1 8.2 국가기록원, "분야별 주제검색: 외환위기(IMF구제금융)". (접근일: 2026-10-02)
  9.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3.1.1.1. 주요국 통화의 대원화환율(통계표 731Y001) — 원/미국달러 매매기준율(일별)". (접근일: 2026-10-02)
  10.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1.5.1.1. 주식시장(일)(통계표 802Y001) — KOSPI지수". (접근일: 2026-10-02)
  11.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1.3.2.1. 시장금리(일별)(통계표 817Y002)". (접근일: 2026-10-02)
  12.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3.5. 외환보유액(통계표 732Y001) — 월말". (접근일: 2026-10-02)
  13.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2.1.1.1. 주요지표(연간지표)(통계표 200Y101) — 국내총생산 실질성장률". (접근일: 2026-10-02)
  14. ↑ 14.0 14.1 예금보험공사, "연혁". (접근일: 2026-10-02)
  15. ↑ Bank of Korea, "Exchange Rate System". (접근일: 2026-10-02)
  16. ↑ 금융감독원, "설립안내". (접근일: 2026-10-02)
  17. ↑ 국가기록원, "분야별 주제검색: 외환관리". (접근일: 2026-10-02)
  18. ↑ IMF, "IMF Managing Director Congratulates Korea on Early Repayment of 1997 Stand-By Credit (News Brief No. 01/82)", 2001.8. (접근일: 2026-10-02) — 보관본: 웹 아카이브 사본
문서 정보
정보 기준일 2026년 10월(법령·기관 원문 확인)
최종 수정일 2026년 10월 5일
작성·관리 투자위키 운영진
내용이 틀렸거나 바뀐 제도가 있으면 오류 제보로 알려 주세요.